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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보리굴비 한 두름 2023.06.28 (수)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 조정
 맛의 기억은 회귀본능을 일깨운다. 텃밭에 올라온 여린 머위와 미나리를 조물조물 무쳐 맛을 보니 아득한 고향 들판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펼쳐진다. 나물 바구니를 든 어릴 적 친구 얼굴도 아지랑이 속에서 가물거린다. 기억회로에 깊이 저장돼 있다 불현듯...
[기고] 따로 또 같이 2023.02.13 (월)
조정 / (사)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오늘은 집에 손님이 오는 날이다. 저녁 준비로 동동대는 내 옆에서 남편은 어느 때보다 협조적인 자세로 하명을 기다리고 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거실 유리창을 닦고 바베큐 그릴도 달구고… . 바쁜 가운데 손발이 맞는 손님맞이는 수월하게 마무리가 되어...
[기고] 뿌듯한 하루 2022.10.04 (화)
조정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루틴이 몸과 마음을 변화시킨다. 부드러운 커피 향이 퍼지는 아침,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목 안으로 넘기는 일은 하루를 시작하는 저항감에서 벗어나는 의식이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데크 난간에 매달린 모이통에 앉은 새들을 관찰하며 잠자는 근육과...
[기고] 캠핑 단상 2022.06.28 (화)
조정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오월은 싱그러운 봄빛으로 눈부시다. 골든 이어스 캠핑장을 향하는 듀드니 트렁크 로드 주변은, 색의 연금술사들이 펼쳐놓은 화사한 화폭 같다. 신록의 나무 사이로 뭉게뭉게 흰 불두화가 피어있고 짙고 연한 초록빛이 서로 스미고 어우러진 산자락은, 마크...
[기고] 겨울에 크는 나무 2022.03.21 (월)
조정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꽃을 시샘하는 풍설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헐벗은 나뭇가지들은 눈바람 속에서도 새순을 틔우고, 뿌리들은 더 깊게 땅속으로 내려가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린다. 적막한 숲속, 고목 우듬지에서 날아오르던 레이븐 몇 마리가 동굴 밖 기척에 놀란 곰의 단잠을...
[기고] 포도주와 노부부 2021.12.10 (금)
조정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림뿐이다. 그늘진 곳에 놓인 항아리 속 포도주는 지금 숙성 중이다.와인을 ‘병에 담긴 시(Wine is bottled poetry)’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어느 날 저녁, 포도주의 혼이 병 속에서 노래하더라/ 나는 알고 있나니 내게 생명을 주고 영혼을주려면/ 저...
[기고] 노매드에게 희망을 2021.08.30 (월)
조정 (사)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대자연의 땅에 사는 가난한 유목민들, 그들은 헤어질 때 언제나 같은 인사말을 건넨다.“길 위에서 다시 만나자.“  '앞으로 어떤 상황에 놓인다 해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서로의 다짐이 실린...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기고] 생각을 품는 둥지 2021.06.07 (월)
조정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어느새 봄기운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교감하고 있다. 눈 부신 햇살과 단비는 새순을 돋게 하고 온 산야를 누비던 바람은 초록 물결을 몰고 온다. ‘날마다 알을 품는 새로운 나’, 알을 생각으로...
[기고] 나의 호위 무사 2021.03.02 (화)
사)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미루나무 우듬지에서 새들이 요란스레 울고 있다. 언젠가부터 새 모이를 주는 일로 아침을 시작한다. 비대면을 강요받는 요즘, 아침마다 날아드는 새들도 이제 반가운 손님이다. 먼 곳의 봄소식이 새들의 깃털에 실려 올 것 같은...
[기고] 한 걸음 더 세상 속으로 2020.12.14 (월)
조 정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어미 거북이가 모래 속에 알을 낳고 두 달이 지나면 새 생명의 움직임이  꿈틀댄다. 새끼 거북이들이 생존의 무기인 이빨(carbuncle)로 알의 내벽을 깨는 시기이다. 이빨이 부러져 피가 흘러도 결코 같은 동작을...
[기고] 어머니의 여름 밥상 2020.09.14 (월)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 회원 / 조정
음식에 대한 취향은 나이가 들면서 보수적으로 변해간다. 미슐랭 가이드 북에 오른 식당의특별했던 음식도, 여름 보양식인 초계탕이나 용봉탕도, 어머니의 음식처럼 언제나 그리운 맛은아니다.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정갈한 밥상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기고] 무채색 봄을 보내며 2020.06.15 (월)
조정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어김없이 봄은 우리 곁에 와 있지만 모두가 말을 잃어가는 계절이다. 전자 현미경으로만 볼수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촌의 질서를 온통 뒤집어 놓았다. 사람들은 불가항력적인전염병에 공포를 느끼며 당장의 무사함에 잠시 안도하고 있다. 신록의...
[기고] 프리다 칼로가 건넨 화두 2020.03.16 (월)
조정 / 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게으름은 실용주의에 떠밀려 사는 사람들의 인간성 회복에 꼭 필요한 여유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에서 벗어나 길을 떠난다.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리는 혼돈의 세상에서 메마른 가슴을 적실 마중물이 필요하다. 방향감을 유지하며 하늘을...
[기고] 긍정 정서 높이기 2019.12.11 (수)
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11월 중순으로 접어들어 대기는 자주 안개에 감싸인다. 산허리에 구름 띠를 두른 겹겹의 산들이 물안개 피는 핏 리버와 어울려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잎을 다 떨군 미루나무 꼭대기에선 먼 곳에 시선을 둔 흰머리 독수리가 묵언 수행 중이다. 서울에서...
[기고] 로이, 당신을 기억할게요 2019.08.29 (목)
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오늘 완성된 포도나무 지지대는 멋진 그늘막이 되었다. 지난주 로이가 세워준 프레임 위에 나무 막대들을 격자로 얹고 포도나무 가지들을 보기 좋게 묶어주었다....
[기고] 도시의 오아시스 2019.05.06 (월)
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노란 꽃술을 내민 감자꽃 한 다발을 남편이 말없이 건넨다. 수확기를 앞두고 감자알을 굵게 만들기 위해 꽃을 따내는 남편 옆에서 나는 잠시 감자꽃을 들여다본다. 희고 보드라운 꽃잎 가운데 샛노란 꽃술을 뾰족이 내민 감자꽃은 너무나 앙증맞다. 키 큰...
[기고] 미니멀 라이프에 대하여 2018.12.19 (수)
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며칠 전 오랜 이웃으로부터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와 같은 해 이민 와 한동네에 살던 프레드락은,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휴가 이야기를 소상히 전해 주었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30년 전 헤어진 친구를 어렵게 찾은 일화였다.  “내가 프라하에 머물...
[기고] 한 알의 씨앗이 나무가 되고 2018.11.19 (월)
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황 서방, 빗소리를 배경음으로 한 Stjepan Hauser의 첼로 연주와 뜨거운 커피 한잔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고 있는 아침이네. 어느새 잎새를 다 떨군 나무들이 빈 몸으로 묵언 수행을 시작하는 계절, 어제는 볕이 좋아 동네 호숫가를 한 바퀴 걸어 보았네. 건강하게...
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어릴 적 엄마는 흔들리는 젖니를 실로 묶은 후 갑자기 잡아당기셨다.“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엄마가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지며 주문을 외우실 때, 나는 폴짝폴짝 마당을 뛰어다닌 기억이 있다.오늘 치과에서 작은 어금니를 뽑았다. 그동안 잇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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